야구
어제는 현수를 만났습니다
"현수야 오랜만이다"
현수는 뒷걸음질 치며 말하길
"나는 현수가 아니다" 라고
현수는 보라색 머리 보라색 눈
보라색 얼굴 보라색 피부를 가진 가지입니다
현수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으니 다시 들려온
"나는 현수가 아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입에서 라켓을 꺼내고 싶어할 거라고
매일같이 말하던 것이 영수인데, 영수는 어제도 내 책상 위에 있었다.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내 책상 위에 있었다. 영수는 내가 알람으로 맞춰둔
오전 8시 1분쯤에 대해서 매번 짜증나게 굴 뿐이다.
"야 내가 말했잖아 내 이름은 현수가 아니다"
현수는 이름 좀 틀린게 뭐가 그리 억울한지 나로선 그런 기분은 잘 모릅니다.
그리고 가지가 덧붙이길
"그러고보면 네 이름이 현수잖아"
"현수야 아무리 자기 이름이 싫어도 그렇지 남에게 전가하진 말자"
두 번이나
영수는 내 고등학교 동창 선배입니다.
동창은 동창인데 한 학년 선배이기 때문입니다.
유급을 한건 아닙니다. 동창 후배도 있는데 동창 선배가 대수입니까?
이런 얘긴 중요한게 아니고
어쨌든 지금 영수는 제 책상 위에서 알람시계를 하고있습니다.
아마도 오전 8시 쯤으로 맞춰둔 것 같은데,
어느 날은 이상하게도 영수가 나를 깨우지 않은 것입니다.
그날 안중요한 약속이 없었던 나는 화가 발끝까지 뻗치어서
왜 8시에 깨우지 않았냐고 다그쳤더니만
배터리가 없어서 그랬다는 변명을 들었습니다
영수는 사람인데 무슨 배터리가 필요하다는 걸까요?
저는 이 일로 화가 많이많이 났으므로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밤잠을 설치는 중입니다.
고사리 손
저희 동네에는 고사리 전문가 영희가 살고 있다.
영희는 내 상상 속의 친구이고 같은 국민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영희가 알고있는 고사리와 제가 알고있는 고사리는 다른 것일까요
아는 만큼 더 보인다고 했으니 분명히 머릿속의 이미지도 다른 것일까요
영희야 고사리 손이라는게 대체 뭐야
고사리 손이 뭐야 영희야
사람 손이 고사리같다는게 뭐야 영희야
고사리 쏜이라는 식물 이름인거니 영희야
영희야 제발 대답좀 해줘
영희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영희의 발인일은 7월 10일입니다.
이런 글을 출판해서 돈 좀 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마음에 드는지 덧글로 알려 주시요
셋 다 싫다면.. 그럼 출판은 못하겠네
